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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 교재 – 23과 용서
    2023-09-10 08:33:5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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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문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 중 하나는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씀으로 이는 기도하는 우리 모두를 가장 당황하게 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문에 표기된 같이라는 조사 때문인데 얼마나 두렵고 부담스러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라는 기도는 자신 있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은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선물을 받고 싶다면 너희가 먼저 그만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 나도 용서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1835에서도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용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 만큼만 받을 수 있다는 고백은 그래서 좀처럼 하기 힘든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기준을 너무도 명쾌히 제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 달란트이지만 우리의 용서는 () 데나리온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다음 이야기로 설명됩니다.

    어느 종이 주인에게 만 달란트의 빚을 졌습니다. 이는 일반 노동자가 약 20만 년 가까이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이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은 그것을 한 번에 탕감해줍니다. 아마도 이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죄 사함의 크기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는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놀라운 탕감을 받은 종이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이는 일반 노동자가 약 백일을 일하여 모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를 보자마자 당장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해주거나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이에 이 얘기를 들은 원래의 주인은 그 종을 다시 불러 그 탕감해준 것을 취소하고 다시 그 빚을 갚도록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의 크기는 만 달란트이지만, 우리가 형제에게 용서해야 할 크기는 백 데나리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가 가능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용서보다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지금도 매 용서받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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