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자료
성령의 사역(Mission of The Parakletos)
요한복음은 성령을 아주 독특하게 paravklhto"라고 부른다. paravklhto"라는 이름자체가 어디서 나왔느냐? 어떤 종교사적 배경에서 나왔느냐?,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paravklhto"의 사역과 역할에 대해서는 예수의 고별사에서 잘 설명이 되어서 우리가 간추릴 수 있는데 이것이 어떤 종교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전승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를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에 있어서 성령론은 신약전체에 있어서 사도적 전승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면서 특별히 요한복음의 공헌이 있는데, 신약의 성령론 전체에 대한 요한복음적인 특수공헌은 바로 성령을 paravklhto"라 하고 그의 역할을 예수의 고별사(14장-17장)에서 - 그 중에서도 14장-16장에 집중적으로 -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의 독특한 공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paravklhto"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성령을 paravklhto"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아주 신약적인 독특한 것인데 이 어원이 어디서 온 것이냐? 정확히 paravklhto"의 뜻이 무슨 뜻이며 이것의 종교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이런 것이 많이 토론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확실한 답이 없다.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그런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성령은 paravklhto"로서 예수가 떠난 후 하나님으로 부터 제자들에게 오시는 영인데 예수가 요구해서 하나님이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14:16 ff, 16:7). 요16절 7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에보면 예수가 떠남과 동시에 paravklhto"가 온다는 것이다.
요14장 16절 -20절까지는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나온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절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 보혜사는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데 예수가 떠난 후에 온다는 것이다.
2) 예수의 부탁으로(요구로) 온다는 것이다.(똑같은 생각을 14:21에서는 아버지가 paravklhto"를 예수의 이름으로 보낸다고 한다.)
3) paravklhto"가 와서 하는 일은 예수의 한 일을 이어받아서 계속하는 것이다. 즉 제자들과 함께 하고, 제자들을 돕고, 제자들을 고아로 내버려두지 않고, 예수의 일을 계승하는 자로, 더 나아가서 14:16-20, 16:7ff에 보면 이 paravklhto"가 예수의 또 다른 자아(The Alter Ego of Jesus)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가 떠나가니 paravklhto"가 온다. 그 때에 세상은 paravklhto"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진리의 영이므로 곧 하늘의 실제에서 오는 계시하는 영이므로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하나 예수에 의해서 새로 거듭난, 위에서 오는 생명으로 거듭난, 제자들은 그를 알게 되는데 paravklhto"가 제자들과 함께 있음으로 알게 된다(14:17).
요14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가 이 세상에 제자들을 두고 떠난다. 그 뒤에 곧 paravklhto"가 온다.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은 예수를 보지 못하나 제자들은 예수를 본다. paravklhto"가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는 성령으로서 예수의 일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다른 자아(Alter Ego)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16:10ff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종말에 올 예수가 paravklhto"를 통해서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지금 오심을 나타낸다.
paravklhto"가 예수와 하나됨을 나타내고 있다. 다르면서 또 하나됨의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즉 예수가 paravklhto"을 통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오신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14:16,17에 가장 포괄적으로 그리고 있다.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고 그들 속에 내주하기 위해서 오신다.
1. paravklhto"의 의미
(1) 어원적 의미
그런데 왜 요한은 성령을 paravklhto"라 부르고 있느냐? 그 paravklhto"라는 이름속에 요한이 의도하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을 해서 그 paravklhto"라는 말 자체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있다.
1) paravklhto"는 parakalei'n동사의 수동형 분사로 명사화한 것으로서 '옆에 와서 돕도록 불림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변호사의 뜻을 갖는다. 그런데 실제로 요한복음에서 paravklhto"를 그릴 때 paravklhto"가 제자들을 변호하는 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변호하는 자로 나타난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의 증거자로 나타난다. 이것을 구태어 변호의 역할로 본다면 paravklhto"는 예수를 변호하는 자이지, 제자들 옆에 와서 제자들을 변호하도록 불림받은 영은 아니다.
도리어 이 세상을 정죄한다든가, 세상으로 하여금 그 죄를 설득시키는 검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옆에 와서 돕도록 불림받은 변호사라는 뜻이 요한이 의도하는 paravklhto"의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다.
paravklhto"를 parakalei'n의 수동형으로 분석하면 '옆에 와서 돕도록 불림받은 자'라는 뜻인데 실제로 paravklhto"의 역할을 그릴 때는 이 paravklhto"가 제자들을 변호하는 역할로 나오지 않고 변호한다면 예수를 변호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검찰로서 그 죄를 확신시키는 일을 한다. 그래서 변호사라는 번역이 마땅치 않는 것 같다.
2) paravklhto"를 능동형으로 이해한다면 '중보자' 또는 '대변인'의 뜻이 있으나 이것도 별로 마땅치 않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이 paravklhto"가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한다는 사상이 없다. 중보기도를 한다는 것도 없다. 그들을 대변한다는 생각도 없다. 대변한다면 예수를 대변한다. 꼭 그래서 예수의 대변자라는 뜻으로 paravklhto"가 쓰였다.
3) parakalei'n의 능동형의 뜻을 취해서 '위로자' 또는 '상담자'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생각은 그렇게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서 paravklhto"를 그릴 때 paravklhto"가 제자들을 위로한다거나 혼돈과 두려움 속에 빠진 제자들을 잘 위로하고 상담한다든가 이런 뜻은 16:6ff에 약간 암시 되어 있다. 요 16:6-8, " 6절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시리라" 6절에 예수가 떠나간다 해서 제자들이 근심 걱정하고 있을 때에 그 맥락에서 paravklhto"가 온다고 하므로 paravklhto"가 위로자의 역할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또 14:16ff에도 너희들을 고아로 두지 않고 paravklhto"로 와서 돌보도록 한다 하므로 paravklhto"가 분명히 위로하고 돌보는 역할이 조금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이 강조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요16:8에서도 parav-klhto"가 와서 하는 일이 세상에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확인시키고 설득한다. 또는 정죄한다고 한다. 그래서 위로자, 상담자 뜻이 문맥상 약간 함축되어 있는 듯하나 그것이 강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paravklhto"는 parakalei'n이라는 동사와 paravklhsi"(위로 권면)이라는 명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어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paravklhsi"라는 말이 안나온다. 그러나 신약전체에서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사도들이 교회를 권면할 때 쓰고 있다.(특히 바울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paravklhsi"'는 뜻에는 두가지 의미가 다 있는데 '위로한다'는 말과 '권고한다'는 뜻이 있다. 영어로 말하면 comfort와 exhort의 뜻이 다 있다. paravklhsi"라는 말이 이런 어원들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므로 요한복음에서 paravklhto"라면 '권면자'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paravklhsi"라는 말이 안나온다. 그리고 parakalei'n이라는 동사도 '권면한다'는 동사로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취하는 것도 조금 어렵다.
그래서 지금까지 paravklhto"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분석해서 요한복음이 성령을 paravklhto"라고 했을 때 무엇을 의도하고 말했나를 조금 설명해 볼려고 했는데 그것이 시원치 않다.
그래서 그러면 paravklhto"를 무엇이라 번역해야 하느냐? 그것부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영어 번역판에는 counselor라고 하고 어떤 것에는 comforter라고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중구난방이다. 우리말로는 보혜사(保惠師)라고 했다. 이 보혜사가 무슨 뜻인가? '은혜를 지키는 분' 이런 말은 지금까지 토론한 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의미이다.
2. paravklhto"의 사상적 배경
그래서 어원에서 이말의 뜻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paravk-lhto"가 무슨 일을 하는가? 그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요한복음에 정의되는가 해서 우리가 조금 그 뜻을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 한다. 그런데 그 전에 이 개념(concept)이 나오게 된 종교사적 배경은 어떤 것인가? 아까 이야기 한대로 이것에 대해서 별로 큰 의견의 일치(consensus)가 없다.
(1) Bultmann의 주장
Bultmann은 요한복음의 paravklhto"사상이 영지주의 단체였던 Man-dea Sect의 Yawar(helper, 돕는자)사상을 빌린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Mandea Sect에서 Yawar는 하늘의 계시자들 중에 하나로서 '돕는자'라는 뜻이다. 이것에서 빌려서 paravk- lhto"사상을 요한복음에 펼쳤다고 그러는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Mandea 문서는 아주 후기(AD 4C 이후)의 문서로서 사실 요한복음과 무관하다.
(2)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
요한복음의 paravklhto"라는 사상은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1) Tandem relationship
그런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이른바 R. Brown 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Tandem relationship로 보는 것이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한 사람이 먼저 실행을 하고 그 사람이 죽은 뒤 그 후계자가 이어 받아서 완성하고 하는, 둘씩 짝지워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는 것을 본다.
가령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주된 종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실현하다가 죽고난 후 그의 후계자가 와서 그 떠난 사람의 일을 계승하여 그 일을 해석하면서 그 일을 완성하는 이런 둘씩 짝지워서 일해가는 모습을 본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도 이렇게 Tandem relationship로 설명할 수 있는데, 지금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paravklhto"관계를 Tandem relationship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가 시작한 계시와 구원의 사역을 paravklhto"가 예수가 떠난 후, 와서 계승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Tandem relationship에서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안수하므로 전임자의 영이 후계자에게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가령 모세가 여호수아를 안수할 때에 모세를 지도했던 지혜의 영이 여호수아에게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을 두배로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paravklhto"와의 관계도 이와같이 Tan-dem relationship으로서 paravklhto"는 예수의 영으로서 예수가 시작한 계시와 구원의 사역을 계승하고 완성하는 의미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paravklhto"이름 자체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지만 paravklhto"개념중 일부가 이런 구약에 있어서 Tandem relationship의 pattern에서 나온 것이다.
2) 구약에서 선지자들의 영의 사상
구약에서 선지자들의 영의 사상이 요한복음의 paravklhto"의 배경으로 나오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들에게 임해서 선지자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다. 이 선지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케하는 영이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의 선생으로 그려져 있고 제자들을 영감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게 하는 이 성령 paravklhto"의 배경이 된다. 더구나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증거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 그 죄에 대한 정죄함의 역할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의 paravklhto"도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역할도 있지만 세상의 죄에 대한 정죄함의 역할도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선지자의 영과 일치한다. 더구나 16:13에는 paravklhto"가 앞으로 올 것을 선언하는 예언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의 영, 또는 선지자에게 오는 하나님의 영으로 paravklhto"가르침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3) 유대교의 천사사상
유대교의 천사사상도 어쩌면 요한복음의 paravklhto"의 사상의 배경일 수 있다. 유대묵시사상에서 하늘의 궁전에서 하나님을 받드는 대신들로 나타나는 천사들 중에 한 천사가 또는 영이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받듬으로 인해서 사탄의 세력과 싸워서 악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자로 나타난다. 이 천사적 영은 이 땅에서 의인들의 편을 들고 가령 욥기에 보면 욥이 죽은 후에 욥의 정당성을 하늘에서 증거하는 자로 나타난다. 그런데 중세의 Targum판에 마침 욥기에 나오는 이와같은 천사를 tqrp로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중세의 타굼판의 tqrp와 요한복음의 이
paravklhto"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고 생각한다. 중세 타굼판의 tqrp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영이다. 지상에서 사단과 싸워서 하나님의 뜻을 펴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백성, 의인들을 하늘에서 증거하고 하늘의 심판에서 증인노릇해 주는 자로, 가령 욥의 정당성을 증인노릇 해주는 자를 tqrp라 부르는데(유대교의 천사사상에서 하늘에 하나님 대신중 이런 일을 하는 천사를 tqrp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이 요한복음과 관계가 있지 않느냐하고 생각한다. 다만 이 타굼은 중세에 완성된 것이므로 너무 늦다. 그래서 확실히 요한복음과 시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다.
4) 쿰란의 진리의 영
쿰란 문서에 보아도 이런 비슷한 사상이 나온다. 요14:17에 paravklhto"를 진리의 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쿰란에서도 이 성령을 진리의 영으로 부른다. 그런 면에서 요한복음과 같다. 쿰란문서에 보면 진리의 영이 거짓의 영에 인도된 악의 세력과 싸우는 쿰란 공동체의 구성원들, 곧 의인들을 전쟁에서 인도하고 돕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혹 이런 쿰란의 진리의 영이 악의 영향아래 있는 그 악의 자식들과 싸우는데 있어서 그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 의인들을 돕는다는 이 사상이 요한복음의 paravklhto"와 가깝지 않느냐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의 paravklhto"도 세상이 받을 수 없는 영으로서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자로 싸우는 자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인 교회에 대해서는 돕는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Otto Betz같은 사람들은 이 쿰란의 성령사상이 요한복음의 paravklhto"사상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5) 유대교의 지혜문서에서의 지혜사상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
과 더불어 그 분안에 내주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지혜로운 자 또는 의인이 되도록 한다는 지혜사상도 요한복음의 paravklhto"의 배경을 이루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보나 어느하나 이 종교사적 배경의 하나를 꼭 집어서 이것이 요한복음의 paravklhto"의 사상의 배경이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구약과 유대교의 서너가지 신학들이 paravklhto"의 사상의 배경을 이루나 이것들이 다 왜 성령을 paravklhto"라고 불렀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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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교회제직(일군)을 위한 세미나 교안 | 관리자 | 2019-06-19 | 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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