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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 - 사탄의 위에 있었으나 신앙을 지킨 교회

기독교는 초기에 소아시아의 대상무역(caravan) 경로를 따라 전파되거나 혹은 무역선을 타고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 무역선들은 실리시아(cilicia)의 올리브기름이나 키프러스(Cyprus)의 구리 등을 싣고 버가모의 엘라에아(Elaea)항구로 운행하던 배들이었다. 바로 이 당시에 버가모(Pergamum)는 주변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막대한 부와 수많은 사원들과 더불어, 이 도시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에베소에 가려져서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주후 1세기경에, 아크로폴리스 위에 세워져 있던 이 헬라도시는 더 이상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아스클레피온(Asclepion)과 맞닿아 있는 계곡에까지 확장되었다. 버가모의 역사는 알렉산더의 부장이었던 리시마커스(Lysimachus)가 죽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주전 281년에 셀류커드와의 ‘쿠루페디온(Curupedion)’전쟁에서 리시마커스가 전사하자, 버가모의 총독이었던 필레타이로스(Philetairos)는 버가모를 장악하여 막대한 부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를 이용하여 버가모를 한층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후 일련의 유능하고 원기 왕성한 통치자들이 계속 배출되면서, 버가모는 주변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에우메네스 2세(Eumenes 2, 주전 197-159)는 셀류커드와의 마그네시아(Magnesia)전투(주전 190년)에서 로마를 도와 승리를 이끈 대가로, 로마로부터 소아시아 서부지역 전체를 양도받았다. 버가모는 당시 그 지역에서 유일한 왕국이었다. 에우메네스 2세는 아크로폴리스 위의 ‘대 제단(the Great Altar)’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이것은 그가 건설한 것으로, 현존하는 헬라시대의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다.

아탈로스 3세(Attalos 3)에게는 합법적인 왕위계승자가 없었는데, 그는 이미 버가모의 종말은 불가피한 것임을 간파하고, 다만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주전 133년에 죽음을 맞으면서 로마에게 국가를 양도하였다. 이후, 버가모는 로마 통치자들의 후원을 등에 업고 계속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다. 에베소와 더불어, 이 도시는 로마 황제제의가 수립된 최초의 도시였다. 버가모의 국민들은 예로부터 통치자숭배 제의에 익숙하였는데, 이는 헬라왕국이던 옛 시절부터 헤룬이라는 곳에서 통치자숭배 제의가 행해졌던 탓이었다. 이 제의 유적은 오늘날까진 남아있다.

로마의 등장은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숙련된 건축가들은 둥근 아치형 천장(vault)을 가진 테라스(terrace)를 만들고, 새로운 사원과, 목욕탕과, 여러 가지 공공건물들을 건설하였다. 아탈리드(Attalid)왕국 시절에는 이 지역 야산에 분포하고 있던 안산암(andesite)을 건축 재료로 사용하였지만, 로마시대 때는 대리석으로 만든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아스클레피온(asclepion), 원형 경기장, 원형극장(amphitheatre)등의 유적들은 모두, 로마시대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버가모의 ‘아스클레피온’은, 로마 제국 내에서 코스(Cos)와 에피다우로스(Epidauros)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의료 중심지였다. 버가모의 번영의 역사는 주후 663-716년의 아랍 정복기 속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 이후로, 그 같은 번영은 다시는 재현되지 못했고,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는 비잔틴시대에 요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가 이후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사도 요한이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이 편지를 쓸 당시, 버가모는 황제제의를 비롯한 이방종교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있는 아데나(Athena)신전의 성소(temenos)에는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신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는 아마도 로마 여신의 신상도 함께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석상들은 이 도시에 있었던 황제제의 유물들 중 가장 초기의 것들이다.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에는 또한 대제단(the Great Altar)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벽면에는 그리스의 신들이 거인들과 싸우는 장면을 담은 부조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말하는 ‘사단의 위(the Satans throne)’는 바로 이 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헬라시대의 제의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에 대한 장악력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당시에 성행하고 있던 황제제의에 더 많은 관심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평지에는 그 유명한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의 성소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치료의 신을 모신 신전으로서, 세계 각처로부터 많은 순례자들과 병자들이 모여드는 인기 있는 명소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성소 안에는 아스클레피온의 특별한 숭배대상인 ‘살아있는 독사(a live serpent)’를 담고 있는 비밀상자(mystical chest)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사도 요한은 갖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버가모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다.

버가모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안디바(Antipas, 계 2:13)는, 놋쇠로 만든 황소 속에 갇힌 다음 불에 구워져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버가모 교인들의 신앙이 열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몇몇은 발람의 이단사설에 빠져 있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와 같이, 버가모 교인들 가운데서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버가모 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동요하는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한편,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그 입의 검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인다. 이와 같이 임박한 재림에 대해서 재차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대 버가모에 있는 여러 교회 건물 유적들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사도요한 교회(the Church of St. John)’로서, 소위 ‘세라피스 신전’으로 쓰여졌던 ‘붉은 벽돌집’이라고 불리어 지는 곳 안에 세워져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마도 주후 4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버가모의 중앙교회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독교 초기에는 버가모 아랫 광장의 안뜰에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유적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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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11/10/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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