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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 교회 -교통 요지에 위치한 상업도시

고대 두아디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주전 7세기경에 리디아 왕국의 성이 여기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1세는 이곳에 수많은 군사시설들을 구축하여, 중앙 아나톨리아의 갈라디아인들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침투경로들을 구축하여, 중앙 아나톨리아의 갈라디아인들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침투경로들을 차단하고자 했다. 당시에 중앙 아나톨리아는 갈라디아인들의 영토였다. 두아디라는 이들 요새들 중의 하나였음이 분명하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도시는 헬라시대에는 버가모를 지키기 위한 요새였고, 이후 로마시대에도 그러한 역할은 계속되었다.

서부 아나톨리아의 다른 모든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두아디라 역시 주후 3세기에는 고트족의 침략에 그리고 주후 7-8세기의 기간 동안에는 아랍왕국의 침략에 각각 시달렸다. 이후 비잔틴 시대에는 투르크족 연합에 맞서는 전진기지의 역할을 감당했고, 라스카리드(Lascarid)왕조의 지배 하에서는 얼마동안 번영기를 맞기도 했다. 두아디라의 도심지 내에서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발굴이 이루어졌지만, 두 개의 중요한 건물 유적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첫 번째 건물 유적들은 주후 5-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뒤쪽 구조물(apsed structruction)의 일부로 생각된다. 이 건물의 벽은 석회반죽이 칠해져있는 작은 돌로 구성되어져있고, 또한 겹겹이 쌓아올린 벽돌로 보강되어 4-5미터의 높이를 형성한 가운데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건물 벽의 남쪽 부분은 최근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건물의 서쪽 측면에는 직사각형의 홀(hall)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는 교회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가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공공 바실리카(basilica)가 아니었겠는가 생각된다.

도심지에서 발견된 두 번째 중요한 유적들은, 열주거리(colonnaded street) 서쪽에 세워져 있던 포르티코(portico, 기념건물의 현관)의 일부이다. 포르티코의 대리석 기둥들은 그 높이가 대략 5미터에 달했다. 주촛대(plinth), 대좌(stylobate), 원주(column), 그리고 주두(柱頭, capital)등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물들은, 약 2세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들을 연결하는 아치들은 4세기 때부터 생겨났다. 건물의 지붕은 아마도 나무였던 것 같다. 뒤쪽에는 2개의 출입문들이 있어서, 여기를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열주거리의 오른쪽 편은 아직도 발굴이 되지 않은 채 도로아래 파묻혀 있기 때문에,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추산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본래 열주거리는 양 끝 부분이 약간 경사진 형태의 자갈도로(rubble path)였다.

사도 요한이 편지를 보냈던 도시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두아디라 만이 자연적인 장벽이 없이 평지에 세워진 도시였다. 이로 인해 적군들은 손쉽게 이곳을 침략하고 약탈 할 수 있었으며, 종종 버가모까지 일사천리로 진군하기도 했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두아디라에도 유대인 거주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며, 기독교 공동체는 주후 1세기 후반부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바울이 유럽지역에서 만난 최초의 기독교인은 두아디라 본토인이었던 루디아였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사도요한의 편지는, 실제로는 일곱 교회 가운데서 가장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분량 상으로는 가장 길다. 하지만 이 편지의 내용은 그저 우연히 적게 된 것이 아니며, 두아디라 교회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말씀을 언급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시는 이교도적인 상업길드(trade-guild)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따라서 두아디라 교회는 그들로부터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도요한은 핍박의 정황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견뎌내었던 이 교회를 칭찬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가이우스(칼리귤라)와 네로, 혹은 네로와 도미티안의 시대에 자행되었던 환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또 다른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즉, 자칭 선지자인 이세벨이라는 여자의 활동들을 허용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아마도 시빌 신탁(Sibylline oracle)의 여사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에는 이러한 신탁행위가 매우 인기를 끌었으며, 이교도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조차도 그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두아디라 교회에는 그러한 사단의 유혹에 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까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고, 또한 이 세상의 사악한 것들, 예를 들면 니골라당의 가르침과 같은 것들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도요한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께서 오시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얻게 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비유는 시편에서 비롯된 것이다(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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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11/10/1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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